Absence
부재(Absence)
모든 사회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또 자연스럽게 생긴 단 하나의 사회가 가족이다. 과거 전통적 의미의 가족은 가부장적 제도의 성격을 지닌 보수적 형태였다. 이러한 가족은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가족은 많은 문제점을 도출해 왔다. 아나키스트의 입장에서는 가족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기도 한다. 가족 내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게 된 것도 고작 수 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남성중심 권위주의의 상징이랄 수 있는 호주제가 폐지된 것도 불과 10년도 안 된 2008년이었다.
현대의 가족은 양성평등의 확산과 개인 자율화 존중 등으로 개방적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개방화와 함께 대두된 가족의 다양한 형태는 긍정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모습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이혼에 대한 인식이 완화되고 가족의 집단성보다는 개인적 자율권이 중시되면서 가족의 해체가 우려할 만한 문제점이 아닌 당연한 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모두 구성원으로써 동등하게 여기지면서 예전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자신의 주장을 더욱 확실히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부모의 의견차이로 인한 갈등이 훨씬 빈번해 지면서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여기에 주말부부나 기러기 아빠와 같은 사회문화적 현상까지 더해짐으로써 가족가치의 상실과 가족의 부재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작품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이 다중노출을 통해 표현되었다. 그들은 가족의 형식과 형상을 가지고 있으되 가족의 전통적 유대는 상실되고 부재한 상태인 것이다. 한 울타리 안에 공생하는 가족이라는 사회에서 우리는 소외되고, 고립되며 존재조차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 속에서 느끼는 가족의 부재는 더욱 공허할 수밖에 없다. 가족의 존재가 가족의 부재를 더욱 강하게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Marionette
너무도 인간적인 마리오네트를 위하여
김경수는 신작 <꼭두각시Marionette>에서 작고 여린 마리오네트를 모델로 내세워 현대인의 초상이자 작가의 자화상을 선보이고 있다. 마리오네트는 가느다란 실에 의해서 조종당하는 인형으로, 오직 누군가의 힘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사물이다. 무대의 마리오네트는 머리와 팔다리에 매어놓은 실에 의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사람과 가장 닮은 인형의 형상이기에 마리오네트의 움직임은 모호함과 기이함을 안겨준다. 많은 예술가들이 마리오네트와 마네킹, 인형 등에 매료된 이유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은 아닌 이들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친숙함 때문일 것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문화적, 제의적 기능뿐만 아니라 놀이의 영역에서도 인형은 살아있었다! 인형은 신과 예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며 때로는 인간을 조종하기도 하고, 대변하거나 위로하기도 하는 역할을 해왔다. 김경수가 신작 <마리오네트>에서 인형을 통해 사회와 삶의 가치를 드러내려 한 것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사물이 전하는 오래된 메시지를 담아내기 위함이다.
그간 인형을 소재로 작업을 하는 미술가 중, 에미 헤닝스(Emmy Hennings)와 소피 토이버(Sophie Taeuber), 한나 회의(Hannah Höch),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주로 무대 연출과 함께 자신이 만든 마리오네트와 연기를 하기도 하고, 움직임을 더욱 정교하게 해서 인형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정체성을 탐색했다. 생명이 없는 것의 인간적인 친숙함과 그들의 움직임이 주는 낯섦과 당혹스러움은 사회에 내제된 폭력이나 죽음을 형상화하며 사회적 금기와 인습에 위반을 시도한다. 김경수 또한 직접 연출한 무대에서 마리오네트의 연기를 감독하고 정교한 조명과 함께 사진을 찍음으로써 혼미와 멜랑콜리로 가득한 사진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사진 속의 마리오네트는 관객을 바라보기도 하고, 사진 속의 세계를 응시하기도 한다. 기괴하게 변형되어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동정과 연민의 감정으로 마리오네트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우스꽝스럽고 괴기스러운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면서 생경한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던 것이 별안간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오며 무대의 마리오네트가 현실 세계로 튀어나오는 듯 일순 시공이 뒤섞이기도 한다. 사진 속의(무대의) 마리오네트는 누구를,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는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가. 그리고 왜 작은 무대에 갇혀있을까. 관객의 응시에 의해 새로운 삶을 얻은 이 마리오네트들이 거주하는 무대는 기실 이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처럼 우리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의 작은 무대(세계)에서 서로의 응시를 끌어내고 있다.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는 인간인 작가는, 이미 자기의 분신이기도 한 이 인형을 통해 마리오네트가 관객을 바라보듯, 자신을 바라보고, 관객이 바라보는 것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시각화한다. 작가는 능동적으로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와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마리오네트와 주고받는 응시 속에서 그를 자신의 일부로, 소유물로 만들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응시에 갇힌 무대 위의 마리오네트가 바로 자신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김경수 사진의 교묘한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빅 브라더의 감시와 통제, 욕망과 권력이 작고 여린 마리오네트의 사지를 묶어 무대 위에서만 움직이게 하듯, 우리 삶의 무대도 보이지 않는 역학구조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즉 지배적인 응시에 복속된 인간의 한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적인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지만, 우리의(마리오네트의) 몸통을 연결한 ‘실’을 끊어버리면, 조명은 꺼질 것이고 무대 또한 사라질 것이기에 탈주의 가능성도 여전히 유효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 세계는 마리오네트가 연기하는 무대처럼 신비와 기이함과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그로테스크함으로 가득하다.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동굴)’에서 유래한 ‘그로테스크’ 미학은 자유로운 환상 속에서 현실 질서가 파괴된 세계를 제시하며 전통적인 미학과 도덕에 반해 새로운 인간주체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테스크는 낯설어진 혹은 소외된 세계의 표현이다. 즉, 새로운 관점에서 봄으로써 친숙한 세계가 갑작스럽게 낯설어진다. 그로테스크는 터무니없는 것과 벌이는 게임이다. 다시 말해서 그로테스크를 추구하는 예술가는 존재의 깊은 부조리들과 반쯤은 우스개로 반쯤은 겁에 질려 장난을 한다. 그로테스크는 세상의 악마적 요소를 통제해서 쫓아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필립 톰슨(Phillip Thomson)의 언급처럼 그로테스크의 세계는 공상적이고 환상적이지만 혼돈의 세계와 맞선 해학과 상상으로 가득한 우아한 세계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전쟁과 학살, 파괴와 폭력으로 난무한 21세기에 인간 소외와 상실감은 깊어가고 현대인들은 속도의 경쟁에 휩싸여 불안과 피로의 노예가 되었다. 생존 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존재는 희미해지고 삶은 갈수록 각박해진다.
김경수는 각색되지 않은 자신의 생생한 경험담을 마리오네트를 통해 배우이자, 감독, 관객의 역할을 하며 펼쳐내고 있다. 김경수의 사진은 그 옛날 플라톤의 동굴을 연상케 한다. 동굴 벽에 비친 환영이 실제인 줄 알고, 그 안에서 지극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과 부조리한 삶의 형태는 지독히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동굴 밖에 실재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카루스의 욕망은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위험한 길일지라도 언제나 날갯짓을 멈추지 않으며 그 존재를 증명하듯이, 김경수의 사진은 무대 밖의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한다. 그의 카니발적 감각은 탈 권위와 무한 변신과 일탈을 꿈꾸는 모든 마리오네트들의 삶의 자리에 ‘라이트페인팅’을 시도하고 있다.
최연하
사진비평가, 전시기획자
1. 꼭두각시가 되다 Become a Puppet
꼭두각시
팽팽한 줄에 이끌려 양손 번갈아 움직이고
어깨춤이 흥겨워지면
오늘도 꼭두각시놀음이다
너의 줄에 매달린 나는
춤사위도 이해 못 한 채
억지웃음 만발이다
너를 믿어도 될까
운명을 거스르는 바보처럼
손목의 줄을 끊으면
슬픈 반항이 시작된다
줄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면
금세 발목이 줄에 걸리고
내 의지는 차가운 바닥에 흩어진다
나를 믿어도 될까.
정지된 시계는 그 때 바로 나의 죽음이다. 깨진 유리에 비친 나는 산산이 해체되어 소멸된다. 그 때 그 순간의 죽음이 어느 날 재현되었고, 지금 사진으로 남았다.
2. 고뇌 Anguish
문득 쳐다본 거울 속에서 나 아닌 나를 바라볼 때가 있다. 낯선 장소에서 순간적으로 느끼는 나의 생소한 모습은 나를 당황케 한다. 거울에 재현된 나의 모습에 나의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사진의 색은 피사체의 색이나 빛 자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항상 빛이 중매를 서야 하고 색깔끼리 서로 궁합이 맞아야 향기가 나고 소리를 낸다. 그런데 그 빛이 신의 색인 흰색이 아니라 붉은색과 파란색, 녹색으로 오염되면 피사체의 색과 인공조명의 색이 충돌하여 더욱 복잡하고, 난해한 사진의 색이 나타난다. 이것이 복잡하고, 어려운 우리네 세상의 색이다.
“여기는 모두가 미쳤어. 넌 곧 알게 될 거야. 여기서 ‘나 자신’은 없다는 사실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체서 캣이 앨리스에게 한 말이다. 루이스 캐럴은 어른들의 세상을 동화 속 이상한 나라로 만들었다. 어른이 된 우리는 모두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앨리스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 있는 쿠키 몇 개를 마음속에 챙겨두어야 한다. 그날도 나는 한없이 위축되었었다.
3. 갈망 Desire
“저 장벽만 넘으면 해방인데” 지난 세월 수 없이 되새겼던 말이다.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심정만큼이나 저 너머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뭉크의 붉은 하늘, 고흐에 작품에 등장하는 노란색, 그리고 샤갈의 푸른색은 시공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 온다. 그래서 화가를 색의 또 다른 발견자라고 부른다. 조르주 쇠라는 빛의 과학을 자신의 화폭에 옮겨 놓았다. 점묘화법으로 색채학을 화폭에 실험한 것이다. 이렇게 그는 작품<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을 통해 신인상주의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정작 빛의 예술이라고 하는 사진에서는 작가의 의도대로 색을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유일한 방법이 다양한 원색의 인공조명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인공조명을 서로 융합시키는 방법으로 라이트페인팅 기법이 있다. 작품 <꼭두각시>는 암실에서 빛의 3원색인 빨강과 초록, 파랑의 인공조명을 사용한 빛 칠을 통해 만들어 졌다.
나는 자연 속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숨 막히고 길이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것이다. 어깨위의 힘든 짐을 내려놓고 남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만을 위해 숨을 쉴 수 있는 그곳을 동경해 왔다.
4. 몸부림 Struggle
삶에 생긴 상처는 청춘이고, 시간에 남은 상처는 사진이다. 그래서 청춘을 담은 사진이 더 아프다. 우리가 지난 청춘을 위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손이 닿지 않고, 나는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든다. 그냥 악몽이기를 기대하지만 잠에서 깨는 일은 결코 없다.
5. 좌절 Frustration
그때 그 순간의 잘 못된 판단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정답은 모른다. “처음부터 정답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 나에게 질문해 본다.
세월에 버림받은 나는 매 순간 죽는다. 떠나는 시간을 잡으려 몸부림치는 나는 서둘러 셔터를 누르지만 시간의 죽음만 마주하게 된다.
꼭두각시
어둠속에서 숨을 멈추고 마음으로 그려본다. 그러고 나면 오른손에 든 카메라의 리모트 스위치로 셔터를 누르고 왼손에 든 작은 조명으로 미리 만들어 놓은 무대에 빛 칠을 시작한다. 빛이 비치는 순간 드러나는 색상의 단편들로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젊은 시절 나의 열정과 아픔들이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 졌다.
누구나 지난 삶을 뒤돌아보면 파란만장한 기억들을 떠 올리게 된다. 나 역시 평탄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다. 과학자에서 기업가로 변신하고, 그동안 여러 번의 창업을 거치면서 숱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야만 했다. 죽도록 힘을 다해 어느 고지에 오르면 꼭 또 다른 장벽에 막히고 좌절할 틈도 없이 또 다시 새로운 고지에 올라야만 했다. 흥망성쇠의 사자성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이었다.
그때는 내가 내 삶을 결정짓는 주체라고 생각했기에 목표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달렸다. 그리고 그때는 아무리 달려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우리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2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 20여년은 가장 처절한 삶이 드러나는 시기이다. 20대 중반에 많은 꿈과 두려움을 가지고 사회에 첫발을 딛게 된다. 그리고 40대 중반이 되면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위치는 이미 결정되어진 시기가 된다. 그 사이에 우리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숱은 유혹을 견디면서 힘든 목표를 위해 걸어가야만 한다.
그 동안 나는 내가 주인공인줄 알고 살았는데, 그것이 결국 우리사회의 구조 속에 갇힌 꼭두각시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 허무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건너온 꼭두각시이기에 후회는 없다.
이 작품은 사진가로 또 한 번의 변신을 한 후 진행 중인 작업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를 표현하기 위한 4연작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작품을 통해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껴왔던 그런 감정과 색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무대를 구성하고 조명의 종류와 빛의 방향, 조도 량을 조절하면서 다양한 라이트 페인팅(light painting)을 시도했다. 모든 작품은 카메라의 노출계에 의존하지 않고, 어두운 공간에서 오로지 감각에 의존하며 빨강과 파랑, 초록, 흰색의 빛을 섞어 30초 내지 2분 동안 그려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서 나의 꼭두각시가 만들어졌다. 작품속의 꼭두각시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김경수
사진가
For the very humane Marionette
In his new work <Marionette>, Kyoungsoo Kim uses a small and weak marionette to show as a model of portrait of modern people and self-portrait. As a doll controlled by fine threads, a marionette is an object which can be moved by powers of someone else only. A marionette on a stage moves as if it is alive by the threads tied to its head, arms and legs. As it is a doll in the firm the most similar to the human, movements of marionette brings ambiguity and oddity. The reason that many artists are also drawn by marionettes and mannequin dolls, etc. is the exotic familiarity which comes from the ‘human appearance’ although they are not human. From the ancient time to the modern time, dolls were alive not only for religious, cultural and ritual functions but also in play fields! Dolls acts as intermediary among gods, art and humans and has played a role of controlling, representing or consoling humans. In the new work of Kyoungsoo Kim, <Marionette>, the attempt to disclose the society and values of life through dolls is to have the old message delivered by the most familiar object of ours.
Among artists who use dolls as subject of their works, Emmy Hennings, Sophie Taeuber, Hannah Höch, Oskar Schlemmer, etc. can be selected and they mainly acted with marionettes made by themselves together with stage production and explored human desire and identity through dolls by making finer movements. Human familiarity with those without life and unfamiliarity and dilemma caused by their movements projected internalized violence or death, thereby attempting to violate social taboo and conventions. Kyoungsoo Kim also supervised acting of marionettes in the stage which he produced himself and by taking photos with lighting, he made photographic images which are full of confusions and melancholy.
Marionettes in photos sometimes look at the audience or sees the world within the photo. Although their odd changes sometimes cause anxiety and horror, but sometimes, sympathetic and empathetic emotions make one identify with the marionettes. Sometimes, on the other hand, the funny and odd appearance is grotesque and at the same time makes a strange world, where what used to feel familiar and comfortable suddenly becomes unfamiliar and terrifying, mixing time and space momentarily as if the marionettes on the stage are coming out to the real world. Who and where are marionettes in photos (stages) looking at? What do they desire and for what they battle? And, why are they constricted in the small stage? The stage where the marionettes who got their new lives through attention of audience can be a small edition of the current world. It is even attracting attention of each other from the small stage (world) of the system which controls all of us like the big brother of George Owell. The author, the human who controls marionettes, visualizes that one needs to look into himself and to look again at what the audience sees as the marionette looks at the audience through the doll, who is also his alter ego. The author appears to be controlling the marionette actively but in reality, he is endlessly plying at a tug of war. In the attention exchanged with the marionette, it is made as part of oneself or as a belonging, but it shows that the marionette on the stage confined in the invisible attention is actually himself. The tricky trap in the photo of Kyoungsoo Kim is right this. As the monitoring and controlling, desire and power of the big brother ties the arms and the legs of the small and weak marionette to move only on the stage, it draws that the stage of our lives can never be free in the invisible structural force, namely, the human limitations subjected by controlling attention. However, the author implies that although “humane humans” cannot escape from it, if we cut the ‘threads’ connecting the body of ours (marionettes), the lighting will be turned off and the stage will also disappear, leaving the possibility of escaping still valid.
This world is full of grotesque which is beyond the scope of mystery, oddity and understanding like the stage where marionettes act. Grotesque esthetics, which is originated from ‘grotta (cave)’ in Italian, can be said to be a methodology to recover the new human identity against the traditional esthetics and ethics by proposing a world where the actual order is destroyed in free fantasy. It can be said “grotesque is an expression of unfamiliar or secluded world. Namely, a familiar word suddenly becomes unfamiliar by looking through a new perspective. Grotesque is a game played with a ridiculous thing. Said again, an artist who pursues grotesque is deep absurdities in existence and kids half-jokingly and half in fear. Grotesque is an attempt to throw out evil elements of the world by controlling them.” As Phillip Thomson mentioned, the world of grotesque is imaginary and fantastic but is also a graceful world, full of humor imagination against the world of confusion. In the 21st Century, which is wildly filed with war and genocide and destruction and violence, human seclusion and feeling of loss deepen more and more and modern people have become salves of anxiety and fatigue in the midst of competition for speed. In the fierce competition to survive, existence becomes indistinct and life becomes more and more heartless.
Kyoungsoo Kim tells undramatized live stories of his real experience in the roles of an actor, producer and audience through the marionette. The photos of Kyoungsoo Kim bring an image of the cave in the ancient Platon. As if the phantom shining on the walls of the cave is real, the people living the very lives and the forms of absurd life in it has continued for terribly long. As, although whether any reality exists outside the cave is unknown, desire of Icarus proves its existence without stopping its wings all the time even if it is a dangerous path which leads to death, Kyoungsoo Kim’s photos causes dreaming of a new world outside the stage. His carnival senses attempts ‘light painting’ at the place of life of all marionette who dream of escaping from authority and unlimited changes and breakaway
Choi, Yeon Ha
photo critic and exhibition planner
Marionette
I stop my breath and draw in dark with my mind. Then, I press the shutter with the remote switch of the camera in my right hand and start brushing the light on the pre-made stage with the small lighting in my left hand. With the shorts of colors appearing at the moment the light shines, I make my story. Through such process, my passion and hardships in my early years are made into a piece of photo.
Anyone remembers turbulent memories by looking back to the past. I also lived a life which is not so peaceful. I changed from a scientist to an entrepreneur and while going through a number of new incorporations, I had to repeat many successes and failures. Once I had climbed up to a high place with all my efforts, I was stopped by yet another barrier and without a chance to moan, I had to climb again to a new high place. It is a life which well suits the saying of rise and fall.
At that time, I thought I was the one who decides my life and looked only to the goal with my best effort. And, at that time, I could not understand myself unable to get out of the place. Accordingly, I now learned that I could not get out of the endless routine which repeated.
To most people in our society, the 20 years from the mid-20s and to mid-40s is the period which shows the most real side of life. In mid-20s, we make the first step into the society with much dream and fear. And by mid-40s, in most cases, one’s place becomes already decided. In the middle, we must walk to the hard goal while taking heavy responsibility and enduring many temptations.
Until then, I thought I was the main actor but when I found out that I was only a marionette confined within the structure of our society in the end, I could not help feeling empty. Nonetheless, as I was a marionette who went through hardships well, I do not regret.
This work is the second work in the four series which were for looking into myself and expressing myself, as a work in progress after changing myself once again to a photographer. Through the work, I intended to express such emotions and colors which I had seen, listened to and felt so far. For this, I constructed the necessary stage and adjusted the type of the lighting, directing of the light and the intensity of illumination to try various light paintings. All products did not rely on the exposure of camera and only relied on my senses in a dark space and they were made in the method of drawing for 30 seconds to two minutes by mixing red, blue, green and white lights. As such, my marionette was made. The marionette in the work is also our self-portrait today.
Kyoungsoo Kim
Photographer
Kyoungsoo Kim
Photographer